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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멍게를 싫어했습니다. 바다향이 강한 음식은 생선회든 해조류든 거의 손도 안 댔는데, 어느 날 친정 엄마가 내밀어 준 멍게 비빔밥 한 그릇이 그 생각을 조금 바꿔놨습니다. 먹을 때는 "그냥 그런데?" 싶었는데, 나중에 문득문득 생각이 나는 걸 보면서 스스로도 아이러니하다 싶었습니다. 뭔가 있긴 있는 음식이구나 싶어서 제대로 한번 파고들었습니다.
멍게 손질법, 이걸 모르면 반은 버리는 겁니다
멍게를 처음 사서 통으로 받아들고 멍하니 바라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냥 마트에서 손질된 것만 사다 먹다 보니 멍게를 직접 다뤄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손질 방식이 맛에 이렇게 큰 영향을 줄 줄은 몰랐습니다.
멍게 껍질 바깥쪽을 자세히 보면 돌기가 두 군데 있습니다. 하나는 십자(+) 모양, 다른 하나는 일자(―) 모양인데, 십자가 입수공(入水孔), 즉 물이 들어오는 입 역할을 하고 일자가 출수공(出水孔), 말 그대로 배출구 역할을 합니다. 손질할 때는 이 두 부위를 기준으로 칼을 넣어 껍질을 벗기고 안쪽 내장을 제거합니다.
내장 제거가 왜 중요하냐면, 멍게 특유의 쓴맛과 잡내가 대부분 이 내장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내장을 깨끗이 걷어낸 멍게는 향이 훨씬 깔끔하고 바다향도 덜 자극적이라고 합니다. 멍게향이 부담스러웠던 저 같은 사람에게는 이 손질 하나가 상당히 중요한 변수였겠다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직접 손질에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제 경험상 재래시장이나 마트 수산 코너에 가면 요청하면 손질까지 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손질된 멍게를 구매했다면 집에서는 소금을 살짝 넣은 물에 한 번 헹궈주는 것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이 헹굼 과정이 남은 잡내를 잡아주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 십자(+) 돌기 = 입수공(물이 들어오는 입): 이 부위 기준으로 칼집을 넣는다
- 일자(―) 돌기 = 출수공(배출구): 반대편 기준점으로 껍질 제거 시작
- 내장 제거 후 소금물로 한 번 헹구면 쓴맛과 잡내가 잡힌다
- 시장·마트 수산 코너에서 손질 요청 가능 — 직접 손질 부담 없음
멍게 비빔밥 재료, 빼면 아쉬운 것들이 있습니다
멍게 비빔밥이라고 하면 멍게만 넣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처음에 그랬습니다. 그런데 친정 엄마 밥을 먹고 나서 계속 생각이 났던 이유를 곱씹어보니, 결국 참기름이었습니다. 진하고 고소한 참기름이 멍게 특유의 바다향을 잡아주면서도 잘 어우러지는 게, 단순히 비비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참기름의 주성분인 세사몰(sesamol)은 강한 항산화 성분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 세사몰이란 참깨를 압착할 때 생성되는 천연 페놀 화합물로 특유의 고소한 향을 만들어냅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이 고소한 향이 멍게의 타우린(taurine) 성분과 만나면서 바다향을 부드럽게 중화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타우린이란 멍게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특유의 바다향과 감칠맛을 만들어내는 성분입니다.
참기름 다음으로 중요한 건 김자반입니다. 시판 김자반(김을 잘게 부숴 양념한 것)은 멍게 비빔밥에 고소하고 짭조름한 깊이를 더해줍니다. 멍게향이 약하게 느껴질 때 김자반을 넉넉히 넣으면 전체적인 균형이 맞습니다. 다만 김만 쓰면 뒷맛이 조금 가볍게 끝나는 느낌이 있는데, 이럴 때 감태(甘苔)를 함께 쓰면 달라집니다. 감태란 우리나라 서남해 청정 해역에서 자생하는 해조류로, 일반 김보다 향이 훨씬 부드럽고 달큰하며 서산 자연산이 특히 유명합니다(출처: 국립수산과학원).
부추도 꼭 넣어보시길 권합니다. 실파나 쪽파를 쓰는 경우도 있지만, 부추 특유의 알싸한 향이 멍게 비빔밥 전체를 살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밥에 먼저 다진 마늘, 빻은 깨, 청양고추, 김자반을 넣고 어느 정도 비벼둔 다음 멍게를 마지막에 넣어주는 순서가 중요합니다. 멍게는 열에 약하고 물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너무 오래 두면 밥이 질어지거나 향이 날아가버립니다.
참기름이 신의 한 수인 이유, 초장보다 낫습니다
멍게 비빔밥에 초장을 곁들이는 분들도 꽤 많습니다. 초장이 비빔밥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초장의 새콤달콤한 맛이 강하다 보니 멍게 특유의 바다향, 그 은은하고 고급스러운 뒷맛을 그냥 눌러버립니다.
멍게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저도 초장 없이 먹었을 때 오히려 더 맛있게 먹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참기름과 멍게향이 서로 덮어주고 끌어올려주면서 생기는 조화가 있는데, 초장은 그걸 깨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간이 약하게 느껴진다면 초장보다는 액젓을 아주 조금 넣어 조절하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액젓은 멍게의 감칠맛을 살려주면서 짠맛을 잡아줘서 전체 맛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또 밥의 양이 너무 많으면 멍게향이 희석되므로, 멍게 양에 맞게 밥을 줄이는 것도 방법입니다.
여름철 입맛이 없을 때 감태에 멍게 비빔밥을 한 숟가락 올려서 싸 먹으면, 감태의 달큰한 향과 멍게의 바다향이 겹쳐지면서 입안이 한 번에 정리되는 기분이 듭니다.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 넣으면 알싸한 매운맛이 더해져 식욕이 훨씬 더 올라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매운 거랑 멍게랑 무슨 조합이냐 싶었는데, 먹어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멍게 비빔밥에 초장을 넣으면 안 되나요?
A. 절대 안 된다는 규칙은 없습니다만, 초장의 새콤달콤한 맛이 강해서 멍게 특유의 바다향과 참기름 고소함이 묻혀버릴 수 있습니다. 간이 부족하다면 초장보다 액젓을 소량 넣는 방식이 훨씬 자연스럽게 맛이 살아납니다.
Q. 멍게를 직접 손질하기 어려운데, 마트에서 사도 되나요?
A. 충분합니다. 재래시장이나 마트 수산 코너에서 손질 요청을 하면 대부분 깔끔하게 처리해 줍니다. 집에 와서는 소금을 살짝 넣은 물에 한 번 헹궈주는 것만으로 잡내가 잡히니 직접 손질에 대한 부담은 크게 없습니다.
Q. 감태가 없으면 그냥 김으로 대체해도 되나요?
A. 김만 써도 되긴 하지만, 감태와 비교하면 뒷맛의 고급스러운 달큰함이 조금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김자반을 넉넉히 넣으면 어느 정도 보완이 되고, 서산 자연산 감태는 온라인에서도 구매 가능하니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합니다.
Q. 멍게 비빔밥에 부추 말고 다른 채소를 써도 되나요?
A. 실파나 쪽파도 많이 쓰입니다. 다만 부추는 알싸한 향이 멍게와 잘 어울리고 향 자체가 비빔밥 전체를 살려주는 역할을 해서, 가능하면 부추를 넣어보는 걸 추천합니다. 특히 여름철에는 부추의 향이 식욕을 돋우는 데 효과적입니다.
결론
멍게를 싫어했던 제가 멍게 비빔밥을 찾게 된 이유는 결국 하나입니다. 참기름이었습니다. 바다향이 강한 식재료에 고소한 참기름과 김자반이 더해지면, 서로의 단점을 덮어주면서 예상하지 못한 조화가 생깁니다. 손질이 부담스럽다면 마트에서 해결하면 되고, 재료도 참기름·김자반·부추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멍게향이 낯선 분이라면 처음에는 조금 어색할 수 있습니다. 제가 딱 그랬습니다. 그런데 먹고 나서 며칠 뒤에 생각이 나기 시작한다면, 그게 바로 이 음식의 매력이 슬쩍 스며든 신호입니다. 여름 한철 입맛이 없을 때, 한번쯤 시도해보시길 권합니다.